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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초등학교 교사가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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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5-04-27 08:50 조회3,6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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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초등학교 교사 곤란한 이유' - 장애인의무고용 적용제외율 사실상 폐지 오늘 미디어다음의 아고라 토론방에서는 초등학교 교사제도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다. 25일 열린우리당 당정협의로 장애인의무고용 적용제외율 폐지를 앞두고, 이 개정안을 발의한 우원식 의원이 올린 글에 대한 논란이 시작된 것이다. 우의원은, 장애인 의무고용 2%를 적용하지 않는 직종과 업종을 폐지하자는 법안을 냈고 이것이 통과되면 앞으로는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이 일할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절대 금지구역이던 초등학교의 교사까지도 될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기분 좋게 소주 한잔을 마시고 싶다, 라고 쓴 글이 도화선이 되어서 토론이 일어난 것이다. 이걸 보고서 초등학교 교사로 보이는 분이 ‘장애인 초등학교 교사 곤란한 이유’라는 제목으로 반론을 냈다. 이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초등학교 교사는 활동성과 기민성, 운동성이 요구될 뿐 아니라 전 교과과목을 담당해야 함으로, 색맹도 교사가 못되는 처지에 장애인이 무슨 교사가 될 수 있겠냐는 요지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밑에 줄줄이 달린 리플들이 한결같이 긍정적이라는 사실이다. 할지, 못할지는 사회가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결정해야 한다는 내용하며, 이제는 편의시설이 없다는 것을 핑계로 댈 게 아니라 함께 해나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역량을 발휘해야 된다는 이야기며, 초등학교 교사라고 해서 여태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고정적인 역할만 있겠느냐? 연구직이나 교무직 같은 담당도 있을 수 있다라는 등등, 상당히 열린 시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교사와 함께 한 아이들의 시각이 얼마나 넓어질 수 있겠느냐는 근본적인 긍정들도 많이 있었다. 나는 법령 개정보다도, 장애인의 삶의 방식을 제대로 파악해주는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리플에서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교사가 되고 싶었던 지난 날의 욕구가 또 다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난 학창시절에 많은 영향을 주신 국어선생님을 좋아해서 꼭 국어교사가 되고 싶어 했다. 국문학과 4학년 때는 가까운 예술 고등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갔는데 한 달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학생들과 지내는 것이 행복했다. 그리고 마지막 연구수업을 하던 날 참석한 교사들이 내 손을 굳게 잡으며, “훌륭한 교사가 새로이 나타났다”면서 격려해주었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이력서를 들고 찾아갔을 때는 만나주는 것조차 피하던 것이 그 당시의 현실이었다. 그렇게 만나주지 못하는 그 분들의 심정도 어떨 것인가? 이해가 될 정도였고, 그렇게 이해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그 전에 (1982년) 순위고사에 붙어서 공무원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는 담당의사 역시 난감한 표정으로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불구 폐질자는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공무원 시행령에 걸려서 움쭉달쑥 할 수 없는 것이 자신의 처지임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불합격이 된 나는, 그 당시 국어선생을 쉽게 구할 수 없었던 시골의 한 고등학교에 임시교사로 그나마 채용이 되었다. 교사들은 3, 4층의 교실을 오르내려야 하는데, 아직 편의시설조차 다 구비되지도 않은 환경에 장애를 가진 선생을 어떻게 채용할 수 있겠느냐고 우려를 하지만, 장애인의 취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에 비한다면 그건 차라리 견딜만한 조건일 것이다. 나는 3층, 4층의 교실에서 수업이 있을 때는 다른 교사보다 먼저 나갔고 그리고 다음 교실로 옮겨갈 때는 쉬는 시간 10분 동안 다른 교실에 먼저 가서 학생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었다. 이 방법은 학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을 뿐 아니라 수업시간까지 더 열성적이게 하는 효과를 나타냈다. 그러나 임시교사 기간이 다하고 나자 나는 여지없이 잘렸고, 그래도 교사가 되고 싶었던 나는 그때의 교육부인 문교부에 진정서를 냈다. 문교부는 나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격이 없는 나를 채용한 교장을 불러 문책을 했고, 문책을 당한 교장 선생님은 나를 불러놓고 혈압을 이기지 못해 벌개진 얼굴로 소리쳤다. “물에 빠진 놈 건져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해도 유분수지, 이렇게 배운 망덕 할 수 있느냐!” 뒤에 교육위원회에서 장학사들과 만나 다시 건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이 한 짓은 초침을 들고 나한테 계단을 올라가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남자 장학사들이 우르르 서 있는데 나는 그 앞에서 목발을 짚고 낑낑대며 올라가던 모습이라니…. 난 이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사람들이 얼마나 미련해질 수 있고, 남의 가슴에 심한 못을 박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아직도 가슴이 미어진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화가 나고 슬픈 건, 그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계단을 꺼이꺼이 올라갔던 나 자신의 모습이다. 이건 복종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항의해야 할 인권의 문제임을 알지 못하고 그들이 제시하는 잣대에 맞추어주기 위해 급급했던 그 모습이 너무나 가련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지금 당당하기 그지없는 젊은 장애인 중에서, 왜 그랬소?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한 마디만 해보라고 한다면, 그때는 장애인이 집단으로 가위눌려 있던 시절이었다라고 말하고 싶다. 비장애인이 요구하는 일방적인 기준을 채워주지 않으면 도저히 인간이 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얼마 전에 양 보조기에 허리 코르셋까지 착용하는 한 후배가 휠체어를 타고 중학교에서 음악선생을 하고 있는 걸 보고 새삼 부러움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녀는 음악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담임을 맡지 않는 대신 상담 주임 교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미 30년 전에 ‘저 하늘의 태양이’ 라는 미국 영화를 보고 희망에 들뜬 적이 있었다. 체조선수가 사고로 경추장애인이 되었는데 휠체어를 타고 초등학교 교사를 하는 내용이었다. 장애는 뭘 제대로 할 수 없는 장애일 뿐이다, 라는 단편적인 공식만으로 본다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초등학생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가 된다는 것은 위험천만의 짓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장애를 단순한 결핍의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인 인간의 문제로 본다면 어떤 대안이 나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네티즌들이 말한 것처럼 교사라는 영역도 종래의 고정적인 역할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체육, 미술, 음악, 현장 학습 등의 특별교사제도는 말할 것도 없고, 연구직이나 상담직 같은 더 다양하고 심도 깊은 영역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런 다양한 영역에서 깊이를 더해주는 역할을 장애인 교사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도 장애인이 초등학교 교사가 된다는 일은 다른 사람이 우려하지 않더라도 당사자 스스로 충분히 고민스러운 문제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사가 되는 길을 선택한 이가 있다면 그는 분명 하늘이 도와주는 다른 비법을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사람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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