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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알고보니 타고난 소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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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5-04-19 15:59 조회3,0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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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원 '가족음악회'로 데뷔 16세 최준군 판소리 입문 4년 만에 '절대 음감' 과시 200504180244_00.jpg 17일 서울 성북구 돈암동의 한 아파트. 밤 9시를 훌쩍 넘긴 시각인데도 집에서 판소리 ‘춘향전’의 한 대목이 흘러나온다. 이몽룡이 춘향이를 광한루에서 만난 뒤 글을 읽어 보지만 마음을 잡지 못하고 춘향만을 그리워하는 ‘천자뒤풀이’ 대목. 최준(16·서울 고명중 2년)군이 북을 직접 치며 능숙하게 불러냈다. “자시생천(子時生天) 불언행사시(不言行四時)하니 유유피창(悠悠彼蒼)의 하늘 천…”.(하늘이 처음 열리고 사계절 구분이 없을 때 끝없이 넓은 하늘의 ‘하늘 천’…) 변성기에 접어들었지만 상청(높은 음)도 곧잘 터뜨렸다. 생후 30개월 때 발달장애 2급 진단을 받았던 준이 다음 달 8일 국립국악원이 주최하는 ‘가족음악회’에서 춘향가의 ‘천자뒤풀이’ 대목을 부르며 어엿한 소리꾼으로 데뷔한다. 공연을 앞두고 하루 2시간씩 연습하고 있는 준은 어머니 모현선(43)씨가 “잘한다”며 추임새를 넣자, 흥겨운 어깻짓으로 답했다. 어릴 적 준은 늘 웃는 표정에 귀여운 행동도 곧잘 하는 아기였지만, 말을 잘 하지 못하고 심하게 더듬었다. 처음엔 그저 ‘늦되는 아이’라고만 여겼지만, 30개월 때 의사에게 보인 결과 발달장애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부모는 결코 주저앉지 않았다. ‘혀도 계속 쓰지 않으면 기능이 퇴화할 수 있다’는 의료진의 말에 엄마는 준이 초등학교 4학년 때인 2001년, 근처 국악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어머니 모씨는 “소리 선생님께 비장애아보다 몇 배는 잔소리를 들을 테지만, 그래도 소리를 하고 북을 치면 준이가 스트레스를 좀 풀 수 있을까 싶어 보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다른 아이의 소리를 듣던 준이 조금이라도 높낮이나 속도가 틀리면 “다시” “이상해”라고 고함쳤던 것이다. 선생님도 놀랐다. “준이는 듣는 귀가 정확하니 개인지도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매주 2~3차례씩 ‘흥보가’와 ‘춘향가’를 배우는 판소리 개인 교습이 시작됐다. 일상적인 대화도 힘들어하는 준이 고사성어나 속담으로 가득한 판소리를 배우기는 쉽지 않았다. 사설 한 줄을 외우는 데 한 달이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음감이 뛰어나 두세 번 먼저 불러주면 틀리지 않고 그 음을 따라갈 줄 알았다. 3년째 ‘춘향가’를 가르치고 있는 박지영(27)씨는 “처음부터 스스로 장단을 타면서 판소리만의 고유한 박자도 잘 표현해냈다”고 말했다. 어머니 모씨는 “소리를 할 때만큼은 어느 아이 못지않다”며 “판소리를 통해 비장애인에게 조금 더 다가갔으면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판소리 연습이 끝난 뒤 어머니와 스승 박씨가 준에게 “잘할 수 있지?”라고 물었다. “나중에 소리꾼이 될 거예요!” 준이 주먹을 불끈 쥐며 답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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