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 자폐아 민진이의 그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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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5-04-29 11:29 조회3,917회 댓글0건본문
청각장애 자폐증 수영선수 김민진 군을 기억하시는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출발 신호조차 인지할 수 없어 코치가 등을 쳐줘야 물 안으로 뛰어들던 스물두 살 청년 민진이. 세상을 향해 물질해 가는 민진이 이야기는 대리석처럼 굳어 있던 가슴들을 녹였고, 사람들은 그 가슴으로 썰렁하기만 하던 홈페이지(www.cyworld.com/minlego)를 데웠다.
세상은 민진이에게 눈을 떴건만, 민진이는 오로지 수영이다.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민진이. 지난 주말 서울 잠실올림픽 수영경기장에서였다. ‘제26회 아레나마스터즈 수영대회’. 일반인과 함께하는 대회(!)였다.
빨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대기석에 앉아 있는 아들 곁에서, 아버지 김상철씨는 쉴 새 없이 전광판을 살피고 어머니 장미선씨는 부지런히 목 근육을 풀어주고 있었다. 이도헌 코치는 물안경을 든 채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긴장은 그들 몫이었다.
‘사랑의 일터’에서 함께 쇼핑백 붙이고 볼펜 조립하는 친구 빛나·수희·준호가 스탠드에 앉아 ‘김민진 짱 화이팅’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흔든다. 자기들도 정신지체를 앓고 있으면서 장애가 좀더 심한 민진이를 끔찍이 챙겨주는 친구들. 민진이의 시선은 손에 든 출전 선수 명단집에 박혀 꿈쩍 않는다. 수백 번 접었다 폈다 했는지 아침에 받은 책이 너덜너덜. “제 나름대로 긴장한 거예요.” 어머니는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장내에 아나운서 목소리가 흐르자, 이 코치가 출발선으로 끌고 간다. 방금 물에 담갔다 꺼낸 수영모자와 물안경을 씌워 주고, 수영복 매무새를 다잡아준다. ‘대회 신기록 제조기’의 위용은 온데간데없고, 말 잘 듣는 초등학교 입학생이 조용히 서 있었다.
출발 신호에 맞춰 이 코치가 등을 쳤다. 가냘픈 비상으로 몸을 내던진 민진이는 스물두 살 청년으로 변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차게 역영하는 민진이. 중증 복합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수년째 민진이를 지켜봤다는 대회 관계자 김성환씨조차 ‘청각장애자’인 줄로만 알았단다.
첫 출전인 배영 100m에서 1분11초22로 대회 신기록을 세우며 1등. 2등과의 차이는 무려 8초. 잇따라 실시된 개인혼영 200m. 치열한 접전을 펼쳤지만 0.18초 차이로 2위. 턴이 문제였다. 남들은 스프링처럼 튕겨나가는데 민진이는 우왕좌왕하는 게 눈에 보였다. “턴할 때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인가 봐요.” 코치 눈에는 아쉬움이 그득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또 한번 확인했다. 그 견고하던 물 밖 세상 장애가 물 안에서 마술처럼 녹아버리는 기적을. 기적의 김민진, 이날 특별상을 받았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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