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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왼 다리는 ‘백만불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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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5-04-21 16:50 조회3,4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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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대표적인 인공 호수인 잠실 석촌호수. 오전 4시면 조깅족들 사이로 검붉은 조깅 트랙 위를 왼발과 목발만으로 힘차게 내딛는 반백의 할아버지를 어김 없이 만날 수 있다. 주인공은 한국전쟁 상이용사인 차춘성(車春成·77)씨.23년째 뛰다 보니 벚꽃 나무들과 함께 석촌호수의 익숙한 풍경이 됐다. ●‘왼발의 마라토너’ 차씨가 본격적으로 조깅을 시작한 것은 1983년. 석촌호수 옆 석촌동에 이사오면서부터다. 동호와 서호로 나뉘어져 있는 석촌호수의 한 바퀴는 2.5㎞다. 차씨는 매일 석촌호수를 네 바퀴씩 모두 10㎞를 달린다.20대 젊은이도 쉽게 추월할 정도의 스피드를 자랑한다. 달리기에 자신감을 얻은 차씨는 같은 해 여의도 한강둔치에서 열린 마라톤대회를 시작으로 제2의 ‘왼발의 마라토너’ 인생을 열었다. 그동안 출전한 대회만 해도 307회.10㎞를 주로 뛰어온 그는 그동안 3000㎞ 가까이 완주한 셈이다. 요즘도 10㎞를 1시간40분 정도에 주파할 정도로 비장애인 못지 않은 실력을 자랑한다. 차씨의 목발은 서울은 물론 부산, 경북 경주, 전북 무안, 강원 춘천 등 전국을 넘나들었다. 대회에서 감투상은 항상 그의 몫이었다. 지난 2000년에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국전쟁 50주년 행사에 참가, 주최측이 제공한 꽃마차를 사양하고 목발로 7㎞를 달려 현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88장애인올림픽 예선전에 사이클 선수로 참가,50㎞를 한 발로 페달을 밟았을 정도로 만능 스포츠맨이다. 차씨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8년 전 강원 평창에서 열린 국제알몸마라톤대회. 차씨는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서 수영복만 걸친 채 달리다 보니 온 몸이 동태가 됐다.”면서 “이후에는 웬만한 추위에서도 끄덕 없게 됐다.”고 떠올렸다. ●80 전에 풀코스 완주가 목표 차씨의 사라진 ‘오른발’은 비틀린 한국 현대사를 아프게 증언한다. 황해도 연백 출신인 차씨는 초등학교 시절 서울에 내려왔다가 1사단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1952년 5월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근처인 서부전선 전투에 나섰다가 박격포 파편에 맞아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하지만 신체의 결함도 끈기와 근면성을 타고난 그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차씨는 도자기와 비누의 원료인 소·돼지 뼈를 일본에 수출하면서 제법 돈을 만질 수 있었다.3남1녀의 자식들도 공기업 간부로 근무하는 등 ‘자식 농사’도 성공했다. 그러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2년 전 생때 같은 유도 선수 출신 막내 아들을 위암으로 먼저 보냈다. 유일한 위안은 마라톤뿐이었다. 그는 아들을 가슴에 묻은 채 달리고 또 달렸다. 차씨의 남은 희망은 나이 80을 넘기기 전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이다. 기력은 충분하지만 대회 주최 쪽에서 심장마비 등을 이유로 말려 한번도 시도하지 못했다. 차씨는 “풀코스 완주로 굴곡 많았던 인생의 대미를 장식하고 싶다.”면서 “하루빨리 통일이 돼 고향까지 오른발과 목발로 뛰어가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밝게 웃었다.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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