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국회방송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국회방송

【에이블뉴스 이슬기 기자】지난 9월 24일 새벽, 서울 서대문구 장애인지원주택에 거주하던 무연고 장애인 고 이원재(만 27세) 씨가 코로나19 감염 이후 급성호흡곤란증후군(ARDS)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24년간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지내다 탈시설 후 지역사회 자립에 성공했던 이 씨는, 서대문구 동신병원을 거쳐 서울의료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상급병원 전원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법적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주요 상급병원들로부터 모두 전원을 거부당했다. 결국 그는 의료적 골든타임을 놓친 채 서울의료원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 비극은 자립 이후 오히려 법적 보호자 부재 상태가 되어 생사의 기로에서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무연고 장애인이 맞닥뜨린 불합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법적 보호자 지위 부재로 인한 치료 공백

1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의원(조국혁신당)이 대한성공회유지재단 지원주택 주거지원센터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고 이원재 씨는 8월 25일, 서대문구 동신병원 진료 중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27일에는 서울의료원으로 전원해 중환자실에 입실, 코로나 폐렴 및 ARDS(급성호흡곤란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9월 2일, 의료진은 기관절개 수술의 필요성 안내했고, 12일 수술을 시도했으나 환자의 연골 구조 특이성 때문에 실패했다. 이에 의료진은 상급종합병원으로 전원을 의뢰했으나, ‘무연고자’라는 이유로 모든 병원으로부터 수용을 거부당했다.

당시 이 씨는 지원주택 코디네이터 등 관계자들의 지속적인 돌봄과 지원을 받고 있었으나 이들은 의료법상 보호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 결과 치료 결정과 전원 과정에 개입할 법적 통로를 완전히 차단당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지원주택 운영기관인 대한성공회 주거지원센터는 9월 18일, 서대문구청에 지원주택 센터 팀장의 임시보호자 선정을 요청했고, 구청은 이를 승인했다. 보호자 자격 인정 직후 전원 관련 소견서 발급을 요청해 22일 발급받았으며, 전원 의뢰를 위해 서울대병원을 직접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환자의 상태는 주말 사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24일 새벽 끝내 숨을 거두었다.

고 이원재 씨의 의료대응 및 전원 조치 경과 타임라인.ⓒ김선민의원실고 이원재 씨의 의료대응 및 전원 조치 경과 타임라인.ⓒ김선민의원실

생명권 가로막는 법적 모순과 제도의 방기

이 씨의 비극적인 죽음은 현행 ‘장애인복지법’과 ‘의료법’ 간 정합성 부재가 무연고 장애인의 생명권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위협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의료법 제24조의2(의료행위에 관한 설명)는 환자(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경우 환자의 법정대리인을 말한다)에게 수술이나 전신마취 등 중대한 의료행위에 대한 설명과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때의 ‘법정대리인’은 미성년자의 친권자, 성년후견인만을 의미하며, 실제로 장애인을 돌보는 시설장이나 운영기관 실무자 등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반면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제20조는 ‘장애인을 사실상 보호하고 있는 자’를 보호자로 명시하고 있어, 두 법이 상충하는 법적 공백이 발생한다.

그 결과 병원은 실질적인 보호자나 지원기관을 법적 대리인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치료 결정 및 전원 조치가 지연되거나 회피되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다. 무연고 장애인이 긴급상황에서 의사표현이 불가능할 경우, 생명을 지키기 위한 지원자의 개입이 법적으로 차단되는 딜레마에 놓인 것이다.

또한 장애인복지법 제59조의7(응급조치의무 등)은 장애인 학대 상황에서의 응급조치에 대해서만 명시할 뿐, 이 씨와 같은 일반적인 의료적 응급상황 발생 시 국가나 지자체의 적극적인 ‘책임의료 의무’는 부재하다.

무연고 중증장애인에게 상급병원 전원이 필요할 때, 권역응급의료센터나 지자체가 신속한 연계 및 치료 수용 의무를 명문화한 규정이 없다 보니, 생명을 담보로 한 전원 거부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생전 고 이원재 씨는 지역사회 주거권 당사자로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에 참여하고 중증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과 건강권, 주거권 강화를 위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청년이었다.

그는 탈시설 이후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며,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증명해온 주체였다. 그러나 국가는 그가 마주한 마지막 순간에 그 권리를 지켜주지 못했다.

정권을 막론하고 이어진 탈시설 정책, 생명은 지켜지지 않았다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위한 정책은 2021년 문재인 정부의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시작으로,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47번) ‘장애인 맞춤형 통합지원’,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79번)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과 기본적 권리 보장’까지 정권을 막론하고 계속 추진되어 왔다. 올해 2월에는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 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2027년 3월 시행)되었다.

하지만 정작 자립 당사자의 생명권을 지킬 법적 장치는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다. 이 씨와 같이 무연고 장애인이 응급상황에서 법적 보호자 부재로 전원을 거부당하고 사망에 이르는 상황을 막을 제도적 안전망은 없는 것이다.

김 의원은 “정부가 지역사회 자립을 국정과제로 내세우며 제도를 확대해왔지만, 정작 자립 당사자들이 생사의 기로에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현실이 드러났다”며 “이 씨의 죽음은 국가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무연고 장애인이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하고, 필요한 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법과 장애인복지법 간 정합성을 확보하고, 불필요한 행정 절차 지연을 방지해야 한다”며 “무연고 장애인의 생명권 보장을 위한 구조적·법적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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