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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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3-10-17 10:07 조회4,058회 댓글0건본문
▶ "장애인의 인생은 굴복과 인내의 연속"
뇌성마비 1급 양영희씨는 장애 때문에 많은 것을 양보해야 했다.
1985년 겨울. 대입 시험 성적은 괜찮았다. 원하던 A대학 전산과 입학이 가능했다. 하지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 당했다. 학교 측에서는 대신, "여성교양학과에 지원하면 입학을 허용하겠다"고 제안했고 결국 타협했다.
"주어진 상황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장애인의 인생은 타협과 인내의 연속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는 지도 모르죠.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들어가 앉아도 될 빈 의자가 어디에 있느냐가 더욱 중요했습니다."
뇌성마비 1급 장애를 가지고 있는 양영희(37)씨는 희망과 달리 엉뚱한 공부를 했다. 고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함께 가는 수학여행도 포기해야 했다. 다른 사람이 부담을 가질만한 일이라면 스스로 한 발짝 물러서야 했다. 늘 그런 식이었다.
▶ "28세에 첫 외출을 시도한 장애인에게 무슨 인권을 이야기할 것인가"
장애인 인권문제. '장애인의 날'(4월20일)이 되어서야만 요란하게 신문과 방송을 장식하는 연례행사 일 뿐이다. 이런 날이 22년째 지나가도 '의미있는 전진'은 요원하다.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라"는 장애인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 가는데 메아리는 허공을 맴돌 뿐이다.
장애인 이동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분노를 넘어 절망에 가까운 절규다. 이동권은 말그대로 길을 자유롭게 걷고 지하도, 지하철, 빌딩 등을 아무런 장애 없이 다닐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장애인에게 이동권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기본권이자 사회에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적 기본권인 셈이다. 장애인이동권연대 박현 사무국장은 "이동권을 처음 언급할 때에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이었다"며 "갈 길이 너무 멀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방향성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참다 못한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주장하며 몸을 쇠사슬로 묶은 채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5월 29일), 서울시청 장애인 복지과를 점거(5월 20일)하는 등 행동에 나서고 있지만, 논의는 항상 제자리 걸음이다. 대표적 인권 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조차 인권보고서 발행 17년만인 지난해에야 처음으로 장애인 인권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뤘을 정도다.
소아마비 1급 이동진(42) 씨는 "생존을 위한 장애인의 몸부림마저 싸늘한 눈길로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선이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세상을 경험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것, 미래를 공부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을 받는 것 등 장애인들이 요구하는 것은 매우 기본적인 것 입니다. 일반인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 나머지 권리라고 생각조차 못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수십년 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숙원입니다."
이씨의 말처럼 장애인 인권 운동은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헌법에서 언급되는 거창한 기본권이 아니다. 다만 이 사회에서 불편하지 않게 생활하는 최소한의 기본권이다. 대한변협은 지난해 발간한 인권보고서를 통해 "장애인이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최저선이 논의된 기억이 없다"고 꼬집었다.
"방안에서 누워 지내다가 세상을 떠나는 장애인에게 헌법상 기본권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아버지가 안과 전문의였음에도 불구하고 28살이 되어서야 처음 자신의 집 밖 외출을 시도한 장애인에게 무슨 인권을 이야기할 것인가"(대한변협 인권보고서. 2002년 8월)
장애인들은 모성권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다. 지난해 9월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이 실시한 여성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 장애인들의 산후진찰 경험은 54.2%로, 여성 전체 산후진찰 경험 95%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적지 않은 장애인들이 배속 아이와 산모의 건강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 하는 것이다. 여성 장애인의 유산율은 무려 49.6%에 달했다. 장애들은 대부분 경제적 부담(41.1%), 이동의 어려움(10.3%) 때문에 모성권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 지경이지만,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일반 시민의 인식은 달라진 게 없다. 경기도 부천시에서는 시각장애인이 이용하는 점자도서관 건립이 일부 주민들의 반대로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7월 서울 용산에서도 서울맹학교의 직업학교 시설을 서울 용산초등학교 안으로 옮기는 문제로 주민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움직이기 위해 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장애인들의 요구에 대해 "이동하는 것도 권리인가"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시민도 적지 않다.
▶ 격리 시키지 말고, 함께 어울리고 책임져야
많은 장애인들은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어울려 사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장애인 실업자 종합지원센타에서 일하는 양영희씨도 "장애인 인권 문제의 해법으로, 먼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양씨는 "동남아 노동자들도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자주 접하다 보니 이제는 우리와 섞여 있는 게 자연스럽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장애인을 격리 시키면 안됩니다.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고, 교통수단을 함께 이용하고, 직장에서 함께 일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함께 어울려서 살아야 하는 같은 시대의 동지입니다."
장애는 개인과 장애인 가족의 책임 아닌 사회 전체의 책임"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 6일 발생한 장애인 동반 자살 사건도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에서 비롯됐다.
동반 자살을 시도한 구모(27, 지체 3급, 대전 서구 월평동) 씨와 구씨의 할머니 김모(72) 씨(중풍장애 2급)는 장애연금 20만원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세상을 등졌다. 평소 구씨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의 손과 발이 되었지만, 자신도 정신지체 장애인으로 더 이상 할머니를 도울 수 없다는 생각에 자살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발견 당시 이들은 손을 꼭 잡고 있었다고 한다. 유서에는 장애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배어있었다.
"지금은 할머니를 지켜줄 수가 없어요… 난 죄도 짓지 않고 살았는데… 제발 손 내미는 아픔을 알아주세요.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도와주세요."
우리는 '손 내미는 아픔'을 언제까지 외면하고 있을 것인가.
<미디어다음 / 신동민 기자, media_dong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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